또다시 무거워지는

새로운 테마에 적응하는 것마저 할 수 없어지다니.
그래서 괜히 썸네일을 넣어본다.

 

 
꽤 그럴싸하다.

 

구글 프레젠테이션으로 썸네일을 만들어봤다.
보통 포토샵이나 포토스케이프를 쓸텐데 전자는 없고, 후자는 불편하다.
그림판도 마찬가지고...

제법 쓸만하다.

곱씹어보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다.
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.

꿈은 그냥 머리속에 무수히 많은 생각 중 하나일 뿐, 현실성은 없다.
목표라고 이름붙이고 그것을 위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면 현실이 되는 것 같다.

조금이라도 그 현실을 가까이 만날 수 있다면.

좋겠다.


코로나19가 유행한지도 벌써 1년이 넘어간다.
이런 현실에 스러져가는 무언가를 애석해한다.
최악의 황사였던 날들도 지나, 모처럼 또 날씨가 좋았다. 좋아지고 말았다. 잠시 멍하니 창밖에서 초록을 뽐내며 햇살과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를 바라본다.


지난 일주일은 모처럼 지난날의 지출을 돌아봤다.
지난 일주일처럼, 지난 소비의 기록들에 의아해하며. 언제나 연말정산 때 잠깐 하던 행위지만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.

올해는 벌써, 4년차 두 번째 전세살이를 앞두고 있다.
언젠가 내 집을 갖고 싶다는 꿈이 있다.
방음시설을 갖춘 노래방 부스도 있는,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는 편안한 나만의 공간.

나에게 집이라는 것은 꽤 대단한 의미가 있는것 같다. 날아다니는 바퀴나 꼽등이를 너무 자주 만나서려나.
의식주 중에 주, 그것을 온전히 가진 이는 전세계에 몇이나 될까.

 

꿈은 아직 실현 가능성이 없다. 집은 충동적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보니 6:4의 비율로 왔다갔다 하고 있다. 살 능력은 있는걸까, 없는걸까. 은행에 가서 물어보는 행위도 뭘 알고 물어봐야 'ㅇㅇ알겠듬ㅇㅋ' 이렇게 이어질텐데 너무나 어설프게 알고 있어서 손품만 오지게 팔고 있는 중.

지금 집은 출퇴근 조건을 빼면 좋은 점이 거의 없다. 거주하면서 유일하게 좋은 점 하나가 더 있다면 빨래가 잘 마른다는 거? 아니 그건 운 좋게도 이전 집도 그랬지만.
지난 집보다 어쩌면 더 불만이 많은지도 모른다. 아니면 비슷하거나.

적어도 다음 집은 다른 집의 용변보는 소리나 코고는 소리는 안 듣고 싶다는 꿈이 아닌 희망이 있다.
발망치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. (사실 나머지도 건물이 그따위로 생긴거니 어쩔 수 없지만...)

이렇게 소리에 민감한데 어딘들 마음에 들 지.

그래서 집을 짓고 싶은 '꿈'도 있다.
수 십 년을 살았던 그 집을 고쳐서 살고 싶었던 꿈도 꿨었지.


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에 짜부러질 것 같다.
아직 안 일어났고 행동하지 않았으니 사실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.

머리론 알고 있지만 왜인지 물음표를 그리는 일이 많아졌다.

 

노동의 가치가 점차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.

'날로먹게 해달라는 건' 6할은 우스개지만 이제는 너무나 진심으로 달려드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기도.

자본주의 사회이니 인간이 아니라 돈이 중심임을 알아도.

그 뒤에는 인간이 있다. 익명 계정 뒤에 인간 있듯.


배려라는 것마저 증발해 사라진 것 같다.

'내가 이런 대우를 당하고 싶지 않다'는 생각이 깔려는 있지만 그게 남을 배려하는 것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요즘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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